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故 최진실씨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추석 연휴인 10월 2일 오전 경기도 양평 갑산공원묘원에서 유가족과 지인들이 참여하는 추모예배가 열렸다. 고 최진실씨의 유골함은 지난 8월 4일에 도난 당하자 네티즌들은 아쉬움을 나타냈다. 고 최진실의 유골함은 도난 26일만에 유가족 품으로 돌아오면서 지난 9월 29일 묘역 정비를 마쳤다. 그동안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엄정화, 이영자 등 톱스타들과 자녀들 및 유가족들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배가 열렸다. 최진실이 이승을 떠난지 언 1년,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되짚어본다.


교훈1.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주목을 받는다.

고 최진실씨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 중 몇명이나 될까?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 10~20대를 벗어나 30~40대 주부를 시작으로 드라마를 자주 안본다는 중년 남성까지 이름만 대도 "아 그 연예인" 하고 알수 있을 정도록 국민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'국민 배우이'다. TV가 온 국민들의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떠오른 1988 드라마 '조선왕조 500년 -한중록'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 최진실은 그동안 좋은 꼴 못볼 꼴 다보면서 성장해온 대한민국의 진정한 '국민 배우'이다. 그녀는 깜찍한 외모로 충무로의 엄청난 러브콜을 받았다. 데뷔 2년 후 빨치산을 다룬 영화 '남부군'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줬다. 그 후 최고의 톱스타 박중훈과 '나의사랑 나의신부'가 초 히트를 치면서 최고의 배우로 거듭났다.

그리고 결정적으로 고 최진실씨가 톱스타로 거듭난 것은 바로 '질투'였다. '질투'에서 최수종과 환상의 호흡을 맞추면서 톱스타로 거듭났다. 톱스타로 거듭난 최진실은 1990년대 광고계를 호령하던 최고의 CF스타였다. 그녀가 이렇게 초 대박 스타로 거듭 난것은 바로 '노력'과 '겸손'이였다. 최진실씨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"노력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꼭와요. 한 번 온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많이 알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"라고 밝힌적이 있다. 고 최진실씨는 노력과 겸손이 어우러져 있다면 성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줬다.

●교훈2. 스타를 만드는 것도 시청자, 망치는 것도 시청자

시청자 없는 방송은 존재하지 않는다. 그 프로를 보는 시청자가 있어야 그 프로가 산다. 시청자가 외면하는 프로는 조기 종영하든지 아예 폐지된다. 이처럼 시청자가 한 프로의 명암을 결정한다. 스타도 별반 다를 것 없다. 사람들에게서 외면된 스타는 성공하기 어렵다. 고조선 이래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람을 볼 때 무엇보다 그 사람의 품성을 봤다.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매너가 없다면 '꽝'이다. 고 최진실씨를 톱스타로 만든것도 바로 시청자들이다. 시청자들은 고 최진실씨의 연기력에 흠뻑 빠져 연일 '최진실 ! 최진실 !' 을 외쳤다. 그 결과 최진실은 하루에 2편을 촬영하는 강행군을 펼쳤다. 하지만, 고 최진실씨의 얼굴에서는 피고한 기색 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.

그를 죽음으로 몬 사람들도 바로 시청자들이다. 물론, 모든 시청자가 악한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다. 일부 시청자들이 확인 되지도 않은 루머를 퍼트리면서 상황은 고조되었다. 언론사들에게는 당연 톱스타인 최진실씨에 대한 루머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. 이는 결국 또 다른 루머를 만들어 냈다. 최진실씨를 죽음으로 몬것은 바로 '악플'이였다. 이미 예전부터 악플에 대한 위해성은 여러번 지목 되어왔지만, 인터넷 환경은 '악플' 막아 낼 수 없었다. 결국 엄청난 악플로 인해 최진실씨는 이승과 등을 지게 되었다.

지난 20년간 국민들을 웃게하고 울게 만들었던 대한민국 최고의 '국민 배우' 최진실. 이젠 부디 편한 마음으로 지내길 바란다.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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